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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한번쯤 느껴볼만 했을 경험을 서술해보자면,
감명 깊은 소설을 한번 완독해보고 난 뒤에
'아! 나도 이런 소설 써보고 싶어!'
라는 현자타임 수준의 짧은 도취감에 빠져들때가 있는데
비유가 비유니 만큼 당연히 얼마 못가서 원고지는 커녕, 키보드에 손 한번 올려보고 금방 때려치우는
비일비재하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저런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란 점에 주목해주면 좋겠다.
이 글은 상업적 목적으로 자신의 창작물을 출판하거나, 각종 공모전 혹은 작가 등단을 위한 작품을 쓰는
전문작가 지망생이 아닌
한순간의 흥미를 잃어버리기 전에 최소한의 성취를 느끼고픈 아마추어 작가들을 위한
소설 집필 가이드다.
본문에서 명시할 내용은 크게 두가지인데, 세계관을 묘사하는 '작법' 과 배경을 설정할때 참고할만한 '고증' 이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요점만 꾸역꾸역 담아 언젠가 여러분이
'아 존나 소설 쓰고싶어!'
라는 헛생각이 들었을때 머릿속에서 띠용! 하고 떠오르게 해주겠다.
(0) 작법
(0-1) 첫마디
소설을 막 쓰기 시작할때 무슨 말로 서두를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1시간 이상의
고민을 하는 만큼 작품의 첫마디는 곧 사람의 첫인상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옛날 옛날에' 라는 서문이 눈에 들어온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두가 독창적이네' 라는 생각보다는 '시발' 이라는 생각을 먼저 할 것 이다.
뭐 여러분들이 심심풀이로 쓰는 소설은 누군가가 읽어보는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그 소설을 지우지 않고 보관했을때 이불킥을 하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니 이야기의 첫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0-2) 첫마디 : 날씨
그럼 날씨에 대한 묘사로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씨 좋은 날이었다'
따위의 글이나 '옛날 옛날에' 나 다를게 뭔가? 적어도 읽는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이 묘사한 날씨를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서 구상할 정도는 되야하지 않겠는가?
날씨를 멋지게 묘사하는 건 뒤로 미뤄두고, 먼저 적어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표현은 이러한 날씨를 표현했구나' 라는 의견이 어렵지 않게 나올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
만약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을 묘사하고자 한다면, 태양과 따라오는 필수적인 자연현상 3가지를
기억하면 되는데
그림자, 흐린 시야, 열기
이 세가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존나 맑음' 이라는 사실을 표현해야 한다.
평소보다 짙게 지는 그림자, 태양광의 영향으로 흐려지는 인물의 시각, 열기탓에 느껴지는
피부의 따끔한 통증 등등을 생각하고 반드시 그 요소를 소설속에 개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의외로 다들 '뭐야 당연하잖아?' 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지금 이 글을 필요성에 의해 읽고있는 게으름뱅이들은 '사건' 과 '인물' 의 묘사에만
굉장한 신경을 쓰지, 날씨 같은 하찮은 부분에는 그냥 '더운 날씨다' 라는 한마디가
묘사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0-3) 첫마디 : 환경
'날씨는 ㅈ또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지금 독자의 눈이 바라보는 소설속의 장소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느 한 머나먼 왕국에서…" 라는 식으로 시각적인 묘사를 첫부분에
집어넣곤 하는데, 삽화나 일러스트가 존재하는 비주얼 노벨을 쓰는 것이 아니니 만큼
독자의 머릿속에서 구상되는 장소를 얼마만큼 작가의 의도대로 매치시키냐는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하지만 가끔씩 독자가 생각한 소설속의 장소와, 작가가 의도한 소설속의 장소가 완벽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존재하는데, 이 경우 작가가 장소를 묘사하는데 있어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작가는 10x5 정도의 작은 크기의 방에, 기다란 탁자와 의자 8개가 놓여있는
흔히 '회의실' 이라고 생각할법한 방의 구조를 표현하는데 대강 이런 묘사를 했다.
'기다란 탁자에 줄맞춰 가지런히 놓여있는 의자들이 보이는 작은 방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표현이 작가의 의도와 부합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점은 저 문구를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작은 방' 이라는 표현을 순간적으로 지나쳐버린다는 것 이다.
독자들에게는 저 묘사가
'기다란 탁자와 세트로 놓여있는 방'
으로 간단히 해석되는 것 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이고, 멋드러진 말로 표현을 한다 한들, 인간의 머리는 기본적으로
정보의 핵심을 파악하고 간략화 시키는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기에, 예전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충실한 독서가가 아닌한, 작가가 손수 써놓은 한글자 한글자를 독자들이 기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작가의 머릿속에는 이미 '회의실' 이라는 모티브가 자리잡혀 있지만, 아무런 사전정보 없는 독자들은
저게 회의실인지 아니면 고급스런 화장실인지 알길이 없다.
장소를 표현하고자 할때 작가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공된 하나의 시각적 환경이 2차원적으로 존재하고
그것을 뒷배경 삼아 소설이라는 도화지로 트레이싱 하는 것 이다.
굳이 멋드러진 시각적 묘사를 사용해가며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불필요한 정보로 쳐내질 수 많은 불량품들을
양산하는 것 보다는 철저하게 있는 그대로의 표현을 정직하게 써내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보통 작가들이 가장 공을 많이 들이는 부분이 시각적 환경을 묘사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작가들이 신경을 쓰는 부분은 소설의 줄거리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전하려는 바 즉 '주제' 이지 '시각 묘사' 가 아니다.
독자(혹은 십년뒤에 자기가 쓴 글을 읽는 자신)가 상상하는 소설속 환경과 작가가 의도한 환경이 얼마나
일치되었는가가 정상적인(훌륭한이 아니다) 작가와 게으름뱅이의 판단기준이다.
(0-4) 첫마디 : 대사
소설속 등장인물의 대사가 첫부분에 등장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얼음과 불의 노래>
일단 등장인물의 대사가 소설에 가져다주는 효과는 두가지다.
첫번째로 소설속에 있는 인물이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직접 언급함으로써 독자들을
보다 소설속으로 깊이 끌어들이는 역할을 수행하고
두번째로 어줍짢은 실력의 작가가 괜히 위 항목에서 다뤘던 시각적 환경에 대한 묘사를 건너뜀 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의 집필능력에 좋은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이다.
소설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언급하는 등장인물의 대사는, 영화의 초반에서 으레 사용되는
까만화면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배우의 독백과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화면이지만,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배우의 목소리에는 이미 극중 역할에
심취한 배우의 감정이 그대로 가미되어 시청자들을 빠른 시간 내로 영화속으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영화는 아직 본말로 흘러가지 않았고, 소설도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독자들은 벌써 소설, 혹은 영화속에 있는 인물들이 자신에게 직접 말을 걸고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제3자의 눈으로 감독, 혹은 작가의 세계를 바라보던 독자들이 그들이 의도한 창작속 세상으로
빠져드는 순간, 독자들이 느끼는 무수한 감정변화는 서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깊어진다.
긴장의 고조에 따라 얼굴의 표정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독자들의 행동은, 지금 그들이 읽고있는
소설이 독자를 그만큼 빠르게 소설속 세계로 흡수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0-5) 묘사
소설의 서문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잘 떼웠다면 그 다음은 소설속 줄거리를 표현하는 전반적인 묘사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인물의 외형,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갈등, 시시각각 변하는 시각과 날씨, 만약 등장인물의 종족이
'인간' 이라면 당연하게 나타나는 생체현상 잠,배고픔,고통,심리적 문제 등등…
어디까지나 소설에서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므로
묘사에 관해서는 왕도가 없다.
하지만 묘사에서 오류를 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만약 등장인물을 구분할만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 무언가는 작품 내내 그 등장인물을 구분케 해주는 장치가 되어야한다.
그저 이름만으로 등장인물들을 구별시키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인물의 묘사보다 다른 부분에
힘이 쏠려야 하는 부분에 한해서만 어쩔 수 없이 사용되어야 하며
만약 인물들의 특별한 특징이 나오지 않고 내내 이름만으로 등장인물을 구별하는 것은 그거야 말로
완벽한 게으름뱅이들의 표상이다.
덩치가 크고 우악스런 인상을 가진 근육질의 검사는 그 외형이 주는 외부의 영향이 실시간으로 작용해야 하며
험악한 불량배스러운 거구의 남자와 가냘픈 여인이 여관문을 열고 들어왔을때 손님들의 반응은
응당 달라야 정상인 것 이다.
등장인물에 반응하는 주변의 환경 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 또한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그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입밖으로든 속으로든 독자들에게 표출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누가봐도 아름다운 최고의 미인이 소설속에 등장했다면, 이 미인은 주변에서 끊임없이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아야 하며, 스스로 역시 '나는 아름다워, 미모에는 자신있지' 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나는 그렇게 아름답진 않은데…' 라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 이다.
단순히 객관적인 이미지를 절대불변의 진리로 여기며 '사람들이 날 강하게 보는군! 난 강해!' 라는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와 '사람들이 날 강하게 보는군, 예전보다는 확실히 성장한 기분이야' 라고 생각하는
유동적 사고의 소유자는 독자들이 느끼는 '매력' 면에서도 확실히 차이가 있는 법 이다.
작가가, 혹은 소설속의 제3자가 계속해서 등장인물에 관해 일방적인 묘사를 남발하고
등장인물 스스로의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면 살아있는 사람으로써 소설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게 아닌
대본을 읇는 연기자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렇듯 묘사는 단순히 작가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것 뿐만 아니라, 소설속 세계의 또다른 작가가
소설 바깥의 정보를 차단한채 그 환경을 묘사하는 '객관적인' 묘사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자.
(1) 고증
(1-1) 인간사회집단의 최상위 단위
묘사고 뭐고 ㅈ도 알길 없고, 나는 맨 먼저 세계관부터 구상해야겠다 싶은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둬야할 필수적인 부분이 있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 의 이야기지만, 사람들이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은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사건' 과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주체인 '등장인물' 이다.
그리고 모든 사건에는 반드시 '발단-전개-고조-해결' 이라는 순차가 있고, 이는 곳 사건에는 반드시
'위기' 와 '해결' 이 따른다.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작가들 수 만큼이나 많지만, 적어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러한 '위기' 는 필연적으로 사건을 이끌어가는 등장인물의 '위험' 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스스로가 '위험하다' 라고 인지할 정도의 사건에 휘말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며, 종극에는 그 사건을 '해결' 하거나 '실패' 해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그렇기에 소설속의 등장인물은 반드시 어딘가 부족하거나 나약하다는 이미지가 의도적으로 따라다니는데
그러한 이미지를 완벽하게 부합할 수 있는 소재는 바로 '인간' 이다.
대부분의 소설은 사지달린 인간이 말을 내뱉고 행동하며, 또 내용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된다.
그러한 인간이 만들어낸, 흔히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과거의 사례는 어떻게 보면 소설가들의
거대한 소재수첩과 같은데, 만약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소설속의 인간이라는 집단이
이루는 단위의 최대 범주에 대해서 먼저 설정해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유구한 전통인 '신분제' 부터 시작해
왕이 각 지방의 영주들에게 자치권을 이양하고,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를 지킬 충직한 기사들을 고용하는 '봉건제', 하다못해
한 사람이 통짜바리로 권력을 휘어잡는 독재체제도 문제없다..
단순히 국가라는 틀 없이 작은 마을,도시 규모를 이루고 있는 사회부터 시작해서, 체계화된
규율이 소속원들을 강제하고 그 정점에 서있는 고귀한 사람이 거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왕권구조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지 정도는
당장 책상위에 도화지 가져다 놓고 약 5분 정도만 낙서를 하며 끄적여도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여러분의 세계관에서 인간의 최대 집단은 어떤 모습인가?
국가인가? 아니면 도시인가?
(1-2) 화폐
의외로 간과하는 점이 있는데, 화폐는 세계관 구성에 큰 역할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흔해 빠진 중세 서양 판타지 소설을 쓴다고 한다면 틀에 박힌 클리셰로
100동화 = 1은화
100은화 = 1금화
뭐 이런식으로 화폐 가치를 매겨놓는 작품이 많은데
이는 뒤에가서 후술할테지만, 저건 경제를 구성하는 화폐의 모습이라기 보단 단순히 물물교환에 지나지 않는 구시대적 통화방식이다.
예를 들어보자.
세계관을 짜는데, 그 세계관에는 드래곤이 존재한다.
드래곤의 심장은 아주 단단하며 이는 여러 무구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드래곤의 심장을 벼려 만들어낸 무기는 아주 비싸다.
그런데 어찌되었건 소설속에서 그 무기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 무기의 위대함을 표현할 방법으로 작가는
소설속에서 통화되고 있는 화폐의 가치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래서… 이건 얼마?
아마 간단하게 생각해서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그냥 책임감 없이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관 최강의 무기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작가가 떠넘기는 것 이다.
책임감 있는 작가라면 적어도 자기가 만들어낸 피조물에 대해서는 스스로 평가를 내릴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또 그랬다고 '이 검은 5000만 골드의 가치가...' 라고 왠 털복숭이 대장장이가
침을 흘리며 표현한다 한들, 독자들은 '아 존나 쌔구나 저 검' 이라고 생각하지
'저 검의 파워 수치는 작가의 기준으로 5000만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5000만 골드란 독자들에게 그다지 필요있는 정보는 아니다.
독자들에겐 요 5000만개의 금동전이 그저 저 검이 존나게 쌔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순한 장치이며, 작가의
설정놀음이라는 점에 대해서 그다지 이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럼 이제 여러분이 이렇게 물어볼 차례다.
'그럼 니라면 어떻게 할껀데?'
우리 주변에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안정적인 통화방침을 운용하고 있는 나라가 여럿 있다.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만을 살펴봐도, 작게는 10원짜리 동전부터 50원,100원,500원짜리 동전이 존재하고
지폐도 1,000원,5,000원,1,0000원짜리 지폐가 존재한다.
이는 아주 정밀한 계산이 요구되는 물건의 가치라는 항목에 대해서 보다 정확한 측량이 가능케 해주는
도구로써 작용하고, 화폐 본연의 임무 역시 훌륭하게 수행중이다.
단순히 동전 100개 = 재질 다른 동전 1개
라는 획일적 계산방법 보다는 백배 천배 훨씬 더 낫다.
그리고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방금 예를 들었던 5000만 골드의 검에는 '현실적으로 소유 할만한' 가치 이상의 평가가 부여되어선 안된다는 점이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분명히 화폐로 가치가 매겨져 있는데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현실을 예로 들어봐도 1조, 2조 짜리 작은 다이아몬드를 훌쩍훌쩍 구매하는 갑부들이 널려있는데
허구의 세상이라는 소설속에서 그런 비싼 물건을 살만한 '부자' 들이 없다?
주인공 외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그 검도 불쌍하고 쓸데없이 그 검에 붙어있는
천문학적인 액수도 불쌍하다.
(1-3) 언어
이건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중요한 부분인데
양들이 풀을 뜯고 노니는 평화로운 평지를 높은 산맥 하나가 두쪽으로 갈라놓은지 80년도채 안되어
산맥을 기준으로 나뉘어진 평지의 두 지역에는 '사투리' 라는게 생겨나는 법이다.
인간의 역사는 길고, 아마 예상하건데 여러분이 만든 세계관에도 단 하나의 대집단만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 이다.
대륙을 통해 나누든 국경선이 있든,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입장을 정의하고 외지인과 공동체를 분리하게 되는데
만약 배경에서 '본래 한나라였지만 분열된지 얼마 안됐다' 라는 설정이 있다면 모를까
양쪽 다 100년,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거대한 국가가 사용하는 언어도 '완벽하게' 같고
억양,말투,버릇... 심지어 유행어까지 전~부다 같다면 그 국가의 국민들은
분명히 사악한 마법사들의 정신조작으로
사실 하루전까지 같은 나라에 사는 국민이었는데 하룻밤 지나고 보니 그딴 기억은 사라진지 오래고 분열된 두 국가가
200년이란 역사를 보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고있는 기억이 새로 새겨져 있었음이 틀림 없다.
가장 중요한건 심지어 같은 '대륙' 에 있는 국가도 아닌, 바다 수백만리 떨어져 있는 또 다른 대륙의
국가도 똑같은 말만 쓰고 있는 기현상이 간간히 많은 소설속에서 일어나기도 하는데
바벨탑 프리퀄을 쓰고 있는게 아니라면 적어도 세계관에서 통용되는 '언어' 에 대해 조금의 고민을
해보는걸 추천한다.
(1-4) 신분
참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의 귀족 나으리들은 하나같이 개 망나니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기에
길가던 어여쁜 처자를 겁탈하고 자신의 소중한 귀족 씨앗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녀, 후에 자식 수십명이
죽은 아비의 재산을 노리는 아비규환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고
자신의 권리를 해임할 수 있는 강력한 왕에게 사사건건 대들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그 선봉장으로 절대 죽지 않는 우리의 주인공 나으리를 세우는건 이미 최고의 플레이감이다.
세계관에서 신분은 사건의 전개에서 여러모로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장치다.
작가가 등장인물에게 안겨줄 수 있는 '위기' 는 등장인물이 어찌 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의 크기가
더욱 커질수록 그 긴장감이 훨씬 더해지는 법이다.
하층민에 위치한 주인공을 억압하는 상류층 등장인물의 전개는 이미 뻔한 수준이고
하류층의 반란이라는 사건은 주 소재로 다뤄지지 않아도 한번쯤 소설속에서 언급되곤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적어도 '신분제' 라는 장치가 여러분이 만든 세계관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이런 틀을 깨부수는 행동은 절대로 시켜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물론 건방진 귀족을 깨부수는 억압받는 하층민은 극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극적인 장면이지만
앞서 말한 내용을 다시 환기하다 싶이, 10년뒤의 자신이(혹은 독자) 지금 쓰고 있는 심심풀이 작품을
읽었을때 '시발 뭐지 이 막장 드라마는?' 이라는 반응을 스스로 내뱉기 싫다면
적어도 세계관 내부에서 툥용되고 있는 '신분' 이라는 관습에 대해서는 등장인물들이 최대한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게 중요하다.
작가의 의도가 본래 '하층민이 건방진 상류층를 혼쭐내는 내용' 이라는 목적을 확고하게 잡아놓았다면
작품의 메인볼륨이 '신분제 타파' 라는 흐름으로 이어지는게 확실히 자연스러우니 괜찮지만
만약 그 외에 다른 주제가 작품의 줄거리를 관통하고 있다면 이 '신분' 이라는 부분은 되도록
놓아두는게 좋다.
그리고 한가지 더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는 말을 알다싶이 귀족 나으리들이 전부 건방지고 호색한인건 아니다.
보다 깊이있고 입체적인 세계관을 구성하고 싶다면, 이미 현실에서도 다각도로 연구된 바가 있는
이 '신분제' 라는 장치의 양면성을 여러분의 방식으로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을 추천한다.
신분제의 결국 상류층의 부패와 무분별한 하층민 약탈이라는 과오를 안겨주긴 했지만
적어도 권리와 비례해 책임을 느끼는 귀족의 환원정신(노블레스 오블리주)을 만들기도 했다.
(1-6) 종족
반지의 제왕 , 실마릴리온 , D&D , 드래곤 라자 등을 거치면서 소설속에는 인간외의
지능형 생물체들이 등장하곤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것으론 엘프와 드워프,오크 등이다.
이영도 작가가 집필한 '~마시는 새' 시리즈만 해도 파충류를 모티브로 착안한 '나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말할 필요가 없는 '도깨비', 거대한 치킨 '레콘' 까지.
인간은 분명히 다채롭다. 인간만이 등장하는 소설이 '종족이 인간뿐이라 식상하다' 라고 불린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하지만 인간의 어떠한 이미지를 선천적으로, 또는 극단적으로 내장하고 있는
'이종족' 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분명히 흥미를 느끼게 하는 중요한 부분임이 틀림이 없다.
세간에 알려진 것 처럼 자연(혹은 숲)을 사랑하고 언제나 온화한 모습으로 날렵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엘프들은 분명히 이질적이라고 말할만 하지만, 분명히 엘프들이 선천적으로 지향하는
'평화' 라는 감정은 본디 인간에게도 있는 법 이다.
또한 공격적인 성향으로 대표되는 '오크' 가 품고 있는 증오라는 감정도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있다.
사실 인간 외의 종족들은, 최소한 인간이 알고있는 감정의 범주 내에서 어느 한 부분이 결여되있는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이 바로 인간과 이종족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종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간과, 최소한 어떠한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이종족의 모습을 비교함으로써, 독자들에게는 '이질감' 이라는 신선함을 주고
또 '익숙함' 이라는 친근감을 동시에 줄 수 있는 것 이다.
세계관을 설정할때 이종족을 개입시키고 싶다면 한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결국 인간의 본성을 완벽하게 뒤집는 소위 '이해불가능' 의 이종족을 만드는게 아니라면, 결국
여러분이 만들어낸 종족은 반드시 인간과 어느부분이 닮아있을 것 이다.
그 인간과 닮아있는 부분, 만약 증오를 막대삼아 자신의 삶을 온통 분노로 채워가는
종족이 등장한다면, 과연 그 종족의 사회는 어떤식으로 구성될까?
애초에 그렇게 호전적인 생물들이 모인다 한들,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지긴 할까?
만약 만들어진다면 어떤 구조일까?
여러분이 만들어낸 이종족은 필연적으로 '인간' 과 전혀 닮아있지 않아야 한다.
만약 사회면에서, 혹은 그들의 습성에서 인간처럼 다양한 감정을 토대로 복잡한 사고를 하는 방식이
아주 판에 박힌 것 마냥 똑같다면 그 종족은 실패한 것 이다.
그건 그냥 모습다르고 말 다른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이다.
숲을 사랑하는 엘프들은 나무를 베어내는 동족들의 모습에서 인간이 인간을 도끼질 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큼의
충격을 먹을 것 이고, 광석을 캐는 독선적인 드워프들은 왕에게 무릎을 꿇고 그에게 충성을 맹새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그것을 명예로운 일이라기 보다는 그저 적에게 무릎 꿇는 비굴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것 이다.
그들에게 있는 선입견, 그리고 선천적인 성격.
신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변하지 않는 두가지의 항목을 기억하는 것이
여러분이 만드는 종족이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 이다.
(3) 마무리
이 하잘 것 없는 필자의 글귀를 결국 읽지 않고 쓴표정을 지으며 스크롤을 내려버린 여러분에게.
그래도 클릭해줘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마운 이 글을 끝까지 정독해주신 사람들에게.
소설을 쓰다가 누군가에게 들키면 혹시 공들여 그리던 그림을 들키는 것과 같이 부끄러움이 느껴지지 않던가?
왠지모르게 자기가 쓴 글이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울 정도로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주관적인 입장이다.
글을 쓰는 내내 퇴고와 수정을 반복하며 간간히 흥에 겨워 거침없이 써내려간
왠 명대사 같은 대사 한줄을 발견하고 손발을 오그리며 과감하게 그 부분을 지워버리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서론에서 말했다 싶이, 그저 자신의 상상력을 과감없이 표출해 내고픈 욕구에 가득 쌓여
한순간의 여흥으로 '찍' 글을 싸버린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자신의 작품에 높은 잣대를 들이미는건 누구나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 잣대를 평가하는 기준이 당신이 최근 본 유명 베스트 셀러 작가의 소설이라거나
혹은 그저 기분상 '음… 그다지 쪽팔리진 않네…?' 라는 주관적인 평가가 기준이라면
얼른 그 잣대를 내려놓는 것을 추천한다.
자기 작품이 쪽팔린건 만국 공통이다.
